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여유가 좀 생겼다. 내가 살고 있는 거제도에는 아침부터 바람이 많이 불어 거리에 온통 은행 낙엽이 날리는 등 한겨울 뺨치는 날씨였다. 원래 오후에 아내와 같이 시장에서 장을 보기로 했는데 날이 추운 관계로 혼자 장을 봐 오는 걸로 수정했다.
주어진 임무는 아들 이유식에 쓰기 위해 방앗간에서 찹쌀을 가루로 만들어 오기와 각종 반찬거리 사기였다. 매서운 추위를 뒤로 하고 집에서 약 10분거리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가서 방앗간을 찾았다. 중간 정도 크기의 방앗간을 갔는데 장사가 잘 안되는지 한산했다. 찹쌀을 내밀면서 좀 빻을 수 있냐고 물으니 오늘 장사 마쳤다고 다른데로 가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앗간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시각이 5시 정도 밖에 안됐는데 벌써 마치는지, 마쳤더라도 간단한 작업이니 좀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리저리 찾다가 00떡집이라고 적힌 아까보다 작은 규모의 떡집이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안에 계시는 아주머니는 전화 받느라 정신이 없고 아저씨 두 분은 가래떡을 만드느라 바빠 보였다. 그 중 아저씨 한 분께 혹시 이거 좀 빻을 수 있냐고 물으니 아저씨께서는 흔쾌히 찹쌀을 받아 주시고는 기계에 넣고 빻아 주셨다. 예전에도 부모님따라 방앗간을 자주 갔던 터라 곡물 빻는 기계는 낯익어 보였다. 처음에 아저씨께서 뭣에 쓸 거냐고 물으시길래 아기 이유식에 쓴다니깐 2번을 빻아 주셨다. 그리고 가루가 다 된 후 봉지에 넣고 나에게 건네셨고 나는 의례 얼마 드리면 되냐고 가격을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께서는 돈 안받아도 되니깐 그냥 가져 가라고 하시고는 바쁘신지 다시 가래떡을 만들러 가셨다.
좀 당황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했다. 돈을 아끼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는 것 보다는 아직도 정을 바탕으로 장사를 하시는 분이 계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요즘은 가만 보면 무엇이든 돈으로 환산하고 원리 원칙대로 하는 분위기가 많은 것 같다. 마트에서 야채를 사도 저울로 정확한 무게를 재어 10원 단위까지 계산하지 않던가?
아까 처음에 갔던 방앗간은 한가하고, 두 번째로 갔던 떡집은 붐비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호의를 겪게 되면 다음에 그 물건을 살 때 어느 곳에서 사게 될 지는 뻔한 것이 아닌가? 장사를 할 때도 좀 더 폭넓게 생각하고 사람 사이의 정을 바탕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떡집을 나온 후 나머지 야채와 해산물 등을 사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무게에 따라 딱딱 정해진 가격으로 물건을 사면 편리하긴 하지만 대충 눈대중으로 물건을 사고 팔고 하나씩 더 얹어 주는 센스, 또한 주인이 정한 가격을 살짝 깎아 주는 센스! 이런 것도 삶의 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