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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3일 목요일

엄마가 돌아가셨다…

간질성 폐질환에다가 폐렴이 겹쳐져서 한 달 정도 고생하시다가 지난 3월 8일 엄마가 운명하셨다. 2월 17일까지 말씀도 하시고 혼자서 밥도 드시고 했는데 갑자기 증세가 악화되어서 이후 3주 정도만에 곁을 떠나셨다. 이렇게 엄마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TV뉴스 속의 사고 소식과 주변 어른들이 돌아가시는 일이 제법 있었지만 나의 부모님은 아직 젊으시기에 제법 건강하셨기에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게도 이런 슬픈 일은 빗겨 나갈 수 없는 것인가 보다. 더구나 평소 아들을 너무 사랑하시고 자랑해왔던 분이시기에 나의 마음은 더욱 아프다.

 올해로 50세. 생신을 열흘 앞두고 곁을 떠나셨다. 가족에게 한 마디 말도 못하신 채로....

 평소 고된 일로 인해 근육통을 호소하시기는 했지만 남자 못지 않게 일을 하셨던 강한 분이셨다. 동네 어른들이 모두 '너희 엄마 같은 사람 없다'며 칭찬과 걱정을 하시곤 했는데...그 걱정이 현실로 되어버린 것인가?

 없는 집에 시집와서 엄마는 갖은 고생을 하셨다. 젖먹이 동생은 등에 업고 나의 손을 잡고는 밤에 아버지와 고기를 잡으러 가시고 낮에는 밭일을 하셨다. 거기다가 겨울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굴을 까셨다. 일년에 쉬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의 고된 삶... 젊었을 때의 가난과 멸시를 자식들은 겪지 않게 하시려고 악착같이 벌고 또 버셨다. 자신에게는 일절 신경을 쓰지 않은채... 그러면서도 봉사활동을 다니시고 동네 어른들 반찬도 해주시곤 하는 인정 많은 분이셨다.

 너무 자신을 돌보지 않으셨고, 오로지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사셨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일반 폐렴인 줄 알고 입원도 늦추신 채 일을 하셨다. 그 후 입원을 하시고 항생제 치료를 했는데도 차도가 없는 것이었다. 뒤늦게 폐조직 검사를 통해 정확한 병을 찾아서 치료를 하고자 했으나 이미 엄마의 병은 너무 진행된 상태였다. 간질성 폐질환을 바탕으로 폐렴까지 동반한 무서운 병... 간질성 폐질환은 아직 완벽한 치료제가 없는 불치의 병이었고 거기다가 폐렴까지 동반된 상황이어서 날이 갈 수록 눈에 띄게 상태가 나빠졌다. 2월 19일부터 수면 상태에서 스테로이드 치료 등 여러 가지 치료를 해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미 되돌아 올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있는 상태에서 어떤 시도도 효과가 없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들어가신 후 약3주 동안 아버지, 동생, 나, 집사람 이렇게 4명은 일을 제쳐 두고 엄마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보람은 없었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혈압이 점점 떨어지더니 결국은 심장이 멎고 말았다. 그 순간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할 수 없었던 멍한 순간들...장례식장으로 옮긴 후 다음 날 입관을 했다. 마지막으로 엄마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입관을 할 때의 그 느낌은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아픈지...그리고 화장터로 옮기고 화장을 하고 나서 엄마는 평소 일하시던 밭에 평장으로 묻혀졌다. 

 지금까지 계속 아침, 저녁으로 엄마를 찾아 뵙고 있다. 그런데 아직 정말 실감이 안난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게. 그냥 평소 엄마가 자주 가던 곳에 들르면 엄마가 그 곳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엄마와 가까웠던 분들을 만나 뵈면 보자마자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도 동네 회관 옆에서 장인어른, 장모님이 오셔서 만나 뵙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 멀리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내 모습을 빤히 쳐다 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애써 못 본 채 했는데 이내 아주머니께서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 나도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엄마가 병이 나아서 퇴원해 오면 동네에 어르신들께서 동네 잔치를 할 거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엄마, 살아서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지만 저 세상에서 우리 지켜 보고 있죠? 이제 제발 자기 자신 좀 챙기세요. 그 동안 자식 챙기랴 남편 챙기랴 너무 힘드셨잖아요. 이제 걱정하지 말고 그 곳에서 편히 쉬세요. 이제 제가 엄마를 위해서 이것 저것 챙길게요. 그리고 그 동안 너무 신경을 못 써서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엄마를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영원히.

2008년 2월 24일 일요일

엄마가 간질성 폐질환으로 많이 아프십니다.

오늘로 병원에 입원하신 지는 19일째이고 중환자실로 옮긴 지는 5일째입니다. 시간은 잘도 지나가네요.

설날 일주일 전쯤에 심한 기침이 계속 되고 호흡이 가쁜 증상으로 인해 읍내 병원에 진찰을 받으셨는데 폐렴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마침 집 근처로 일이 있어서 올라 가는 도중에 그 얘기를 듣고는 바로 시골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엄마는 주무시다가 아들이 늦게 집에 와서 내일 출근하려면 밤길 운전해야 되는데 걱정된다면서, 엄마는 괜찮다면서 얼른 가라고 하셨죠. 저는 평소 폐렴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병원에서 입원을 제법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당장 내일 입원하라고 엄마와 아빠께 말씀드리고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거제도 집으로 갔습니다. 부모님은 내일 입원하겠다는 약속을 그 당시에는 하셨지만, 설 대목에 굴(저희 동네에서는 대부분의 집에서 겨울에는 굴양식을 하십니다.)값이 비싸기 때문에 굴 까고 설 연휴되면 입원을 한다고 했습니다.

한 4일 정도 더 일을 하신 후에 결국 2월 5일 저녁에서야 읍내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 때까지도 엄마는 혼자 걸어다니시고 말씀도 잘 하시고 숨만 가빠할 뿐 모든 게 정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는 병원에 계시고 설 연휴도 지나고 토요일에 읍내 병원에서는 폐렴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다며 좋은 기계가 있는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하여 바로 진주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 때까지도 엄마는 팔팔하셨죠. 저희도 폐렴이니 얼마 후에는 완치하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주말이 지나고 한 주가 더 지나갔습니다. 매일 전화로 엄마의 상태를 확인했는데 엄마는 작은 병원에 있을 때보다 나아졌다며 금방 나을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직장 때문에 평일에는 올라가지 못했죠. 동생도 아버지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는 거의 대부분의 평일을 엄마는 혼자 보내셨습니다. 중간중간 병문객들은 많이 다녀 갔죠. 수요일에는 기관지 내시경 검사도 했습니다.

그 렇게 다시 주말이 되고 엄마에게 갔는데 엄마는 열이 심하게 나고 눈에 띄게 심약해져 있었습니다. 호흡도 매우 가빠졌구요. 저는 당장 동생과 아버지께 연락하여 내일 올라오시고 엄마 간호를 좀 해야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다시 월요일이 되었고 저는 오후에 엄마께 갔습니다. 그런데 토요일보다 훨씬 더 상태가 안좋아져 있었습니다.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밥도 못 떠먹을 정도였죠. 저녁에 담당의사와 면담을 하면서 상태가 많이 안좋으니 내일 조직검사를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술동의서를 썼습니다. 그날 밤 다음날 직장은 쉬기로 하고 밤새 제가 간호를 하게 되었는데, 새벽에 엄마의 상태가 갑자기 더 안좋아졌습니다. 호흡이 너무 가빠서 숨을 못 쉴 정도였죠. 중간에 잠깐 괜찮아지는 듯 하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갑자기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하다가 안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 문을 여니 엄마가 쓰러져서 옆의 세면대에 기대어 있고 눈이 돌아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바로 소리쳐서 간호사를 불러서 산소호흡기를 쓰고 이것저것 치료를 하더군요. 그렇게 고비는 넘겼으나 밤새 엄마는 열로 인한 땀과 호흡곤란으로 눈을 감고 편안히 주무시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화요일이 되었고 아침에 x레이를 다시 찍은 결과 하룻밤 사이에 상태가 너무 심각해졌다고 목에 호스를 넣어서 숨을 쉬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상태가 너무 악화되어 조직검사도 못할 상태이고 병의 확실한 원인은 모르지만 의심되는 진단결과를 가지고 투약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산소호흡기 호스로 숨을 쉬게 하려면 수면제를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수면제를 많이 써도 엄마에게 효과가 없더군요. 평소 신경안정제 같은 것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특이체질이라서 그런지 남들보다 너무 수면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깨어있는 상태로 몸안에 호스가 들어와서 산소를 불어넣어 주니 자기 호흡과 부딪쳐서 엄마가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도저히 옆에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파하는 엄마의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이 찢어지고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우리 엄마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고....

정신이 말짱한 상태에서 엄마는 그 고통을 다 감내하셨고, 그렇게 힘들어 하는 와중에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으셨지만 이 못난 아들의 말만은 꾹 참고 들으셨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의 씨름 끝에 엄마는 어느 정도 수면 상태에 접어들었고 현재까지 수면상태에 계십니다. 병원에서는 중환자실이 없어서 일반 병실에서 중환자실처럼 환경을 조성하여 있다가 목요일에 자리가 나서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폐렴인 줄 알았지만 폐렴이 아니고 "간질성 폐질환"이었습니다. 이 간질성 폐질환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며 10만명당 1명 꼴로 걸리는 희귀병이고 완치가 어려운 정말 무서운 질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결국 심해져서 호흡부전으로 사망하게 되고 40~50대에 호흡곤란과 마른 기침이 나타나는 증상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쉽게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가 하고 넘기다가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은 병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상태가 너무 안좋아 져서 다른 큰 병원으로 옮기거나 조직 검사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쓸 수 있는 약을 쓰면서 상태를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루에 두 번 면회를 가서 등에 욕창이 생기지 않게 등을 닦고 파우더를 바르기만 하면서 엄마가 낫기를 기도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평소 엄마는 젊었을 때의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시골에서 온갖 고생을 다하셨습니다. 30년을 시골에서 일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서 저녁까지 일하셨습니다. 온갖 밭일을 하시면서 농약을 뒤집어 쓰기도 하고 굴양식을 하면서 굴껍데기에서 나는 먼지를 둘러 쓰기도 하고 굴까는 하우스 안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종일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굴을 까셨습니다. 아들을 장가 보낸 이후에도 아들에게 더 큰 집을 사주고 손자 입을 옷과 먹을 음식을 사 줄 거라면서 죽자 사자 일을 하셨습니다. 평생을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를 하시고 병원에 입원하여 숨쉬기도 힘든 와중에서도 의사가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고 하여도 아들이 걱정하니깐 아들에게는 말하지 말라하시고 하셨습니다. 자기 일로 바쁜 와중에서도 동네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 장어국을 끓여 주시고 부녀회에서 봉사활동을 다니시던 분이었습니다.

항상 자신보다는 자식을 위하던 분이셨습니다. 몇 천원짜리 옷 조차도 아깝다고 사 입지 않으시고 신발도 거의 사 신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일하고 집에 오시면 어깨가 허리가 아프다며 부황을 혼자서 뜨고는 하셨습니다. 너무 피곤하셔서 항상 베개에 침을 흘리고 주무셨죠. 저는 항상 엄마에게 제발 그러지 말라고 이제는 편하게 돈 안벌어도 살 수 있지 않냐고 매번 뭐라고 했습니다. 제발 엄마 자신 좀 챙기라고 아프면 일하지 말라고 나중에 나이 더 들면 분명히 많이 아플거라고 제발 제발 일 좀 적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아직 젊으니깐 돈을 더 벌어놔야 된다고 지금 안아프니깐 일하는 거라고 걱정하지 말고 저나 운전 조심하고 아프지 말라고 항상 걱정하셨습니다.

엄마의 인생을 지켜봐온 저로서는 안타깝고 답답하고 미안하고 불쌍하여 미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껏 표현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심장이 매우 안좋으신 상황인데 아버지가 너무 힘들어 하기 때문입니다. 표현은 하지 않으시지만 어떻게 보면 저보다도 아버지가 더 마음 아파하고 계실 것입니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엄마에게 막 대했던 기억, 조금만 참으면 되었을 텐데 화를 냈던 기억들이 너무 떠올라서 너무 힘들다고 동생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수면제와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혈압강화제 등 약물 투여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와중인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폐 상태가 너무 안좋기 때문에 깨어나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수면제를 쓰지 않으면 정신은 들겠지만 너무 숨쉬기가 힘들어서 버티지 못할거라고 하더군요. 희망적이게도 폐가 좀 좋아지게 되면 정상으로 회복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빨리 병명을 파악하여 치료를 시작하지 못한 병원에도 화가 나지만, 그 보다도 직장 핑계로 엄마 옆에서 엄마를 지켜주지 못한 제 모습에 화가 나서 미치겠습니다. 제가 옆에 계속 붙어서 담당 의사와 면담을 하고 이리 저리 알아보고 했다면 좀 더 일찍 치료를 할 수가 있었을 테고 지금처럼 나빠지지는 않았을 테니깐요. 물론 모두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말입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처럼 아프고 힘들고 견디기 힘든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자꾸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 아파할 때와 쓰러지실 때, 호흡기 때문에 온몸을 비틀며 힘들어 하시던 때의 모습이 생각나 미치겠습니다. 정말.............미치겠습니다.

엄마, 제발 툴툴 털고 일어나세요.......이 못난 아들이 앞으로 평생 엄마를 모시고 살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제발 제발 제발 일어나세요....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