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심순덕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문득 이 시가 생각이 나서 옮겨 봅니다. 여기 저기서 검색을 해보니 엄연히 지은이가 있는데 작자 미상이라 적어 놓은 곳도 있고, '어머니는'을 '엄마는'으로 바꿔놓은 곳, '알았습니다.'를 '알았다'로 바꿔놓은 곳 등 다양한 모습이었습니다.
올 3월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시를 읽어 보니 그 의미가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 제 나이가 아직 20대 후반이지만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부모님께서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커왔기 때문에 시 구절 하나하나가 제 가슴에 와서 꽂힙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밥은 대충 챙겨 드시고, 손발이 다 닳아서 손톱을 깎을 수 없을 정도까지 부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직 50세 밖에 안되셨는데 말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철이 든 뒤에는 매번 어머니께 이제 살만한데 왜 그렇게 모질게 일하느냐고, 이제 좀 편히 쉬면서 즐기면서 사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예전에 못살고 고생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항상 미래를 대비해야 된다면서 일을 하곤 하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도 그랬고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일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갑자기 병세가 심해지시고는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고생의 결과가 이렇게 나쁘게 될까봐 항상 저는 안절부절 못했는데, 기어이 이런 결과가 나오니 어머니가 미우면서도 너무나 후회가 되고 가슴이 아픕니다.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존재가 저희 집에서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가족 4명이서 꽤 화목하게 지냈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떠나심으로 인해서 아버지, 동생, 그리고 저는 아직도 너무나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은 하지만 그 충격이 너무나 큽니다. 살아갈 목표를 상실한 느낌입니다. 물론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 생각하면서 이겨내려 하지만 쉬운게 아닙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더 자주 전화하고, 더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좋은 옷도 사드리고, 좋은 곳에 여행도 보내 드리고 했어야 하는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