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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4일 금요일

세 번째 어머니 제사

오늘은 어머니 기일이라 가족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 아내는 아침부터 4살, 2살(만5개월) 아들 둘을 데리고 시골 집에 내려가 제사 음식 준비를 도와 드렸고 나는 직장에 바쁜 일이 있어 7시나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퇴근하고 오는 길에 어머니가 모셔져 있는 예전 밭에 갔다 오려고 했으나 어둠이 내려와 가지는 않았다. 다만 차를 세우고 어머니가 계신 쪽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큰 아들은 낮잠에서 깨어난 후 어느 정도 기운을 회복하여 팔짝 거리고 있었고 다들 제사 음식 준비와 제사상 차리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그렇게 친척분들이 모여서 8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일찍이 제사를 모시고 같이 저녁밥을 먹은 후 각자 집으로 다시 향하였다.

이제 세 번째 제사가 지났다. 첫 제사 때는 아주 많이 울었다. 아직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많이 아파했다. 두 번째 제사 때는 마음은 다 잡은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막상 제사를 모시는 도중에 흐르는 눈물은 역시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 제사. 한결 마음은 가벼웠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고, 나 스스로도 마음을 버리기 위해 많이 노력한 결과였다.

사실 아직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긴 마찬가지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감정을 어떻게 통제하는 가는 결국 나의 몫이다. 3년간 특별히 마음 수련을 다녀 오고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깨달은 건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개념인 것이다. 아내가 몇 년간 심취해 있는 '마음수련'도 결국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자세히는 모르고 전적으로 개인적 판단임)

그런데 내가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버리기 위해 노력한 계기는 우습게도 내 몸이 아프고 난 후였다. 한 동안 마음 속에 계속 후회, 미련, 자책 같은 감정을 담아 두고 눈물로 날을 지새다 보니 내 몸이 바로 반응을 하였다. 대상포진, 헤르페스 각결막염 등 면역력이 약할 때 오는 질병이 연달아 나타났다. 약을 먹어 어느 정도 치료를 하긴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내 몸이 아프다 보니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버리기 위해 의도적인 노력을 많이 하였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몸의 이상반응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음 속의 번뇌도 많이 줄어들었다.

물론 그 사이 또 다른 문제로 인해 많은 고민을 했고 최근에도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해결된 상황이다. 아주 크게 흔들렸던 가족이 다시 제 자리를 찾기까지 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다시 또 위기가 찾아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어 예전처럼 많이 힘들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 아들에 대한 남달랐던 어머니... 아니 엄마. 그리고 첫 손자가 며느리 배 속에 있고 아들이라는 얘기까지만 듣고 끝내 손자의 얼굴을 못 보고 가신 엄마. 돌아가시기 전 손자가 태어나면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공부도 시켜주겠다시던 엄마. 그 손자가 이제 엄마의 제사날 폴짝폴짝 뛰어다녔고, 모두 절을 할 때는 바닥에 엎드리며 절도 따라했다. 그리고 다른 방에서는 둘째 손자가 세상 모른 채 자고 있었다. 아주 화목한 일상의 저녁이 될 수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아쉬움이 크지만 잠깐의 생각일 뿐이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언젠가는 내 아들도 내 나이가 될 것이고, 아들의 아들도...계속...

 

2010년 10월 10일 일요일

둘째 아들 출산기

1. 10월 6일 오후 9시 동광양에 있는 한 산부인과에 유도분만을 위해 입원

2.  내진 결과 유도분만제를 안써도 되겠다 하여 10월 7일 아침 6시부터 촉진제를 맞기 시작함

3. 오전 11시경 자궁문이 많이 열렸고 강한 진통이 시작됨. 2~3시간 내에 분만하겠다고 간호사님이 말함

4. 오후 1시 반이 되었는데 자궁문은 충분히 열렸으나 아기가  밑으로 내려오지 않음

5. 결국 1시 40분 정도에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해야되겠다고 판단함. 그러는 와중에 아내는 30초 정도 간격의 강한 진통에 매우 힘들어 함

6. 이미 수술을 하고 있는 산모가 있어 오후 2시 30분 정도까지 기다림. 이 시간이 제일 아내도 나도 고통스러웠음

7. 수술이 시작되었고 수술실에서는 여전히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려 옴. 잠시 후 마취가 됐는지 비명소리는 잦아듦

8. 2시 40분 경 둘째가 수술실 밖으로 나옴. 그런데 정말 아이가 눈에 안들어 옴. 제왕절개가 이렇게 힘든 건지 새삼 느끼게 됨. 아들은 무려 4.1kg! ㅡㅡ;

9. 3시 30분 경 아내가 수술 밖으로 나왔는데 의식은 있으나 매우 힘들어 간단한 눈 깜빡임으로 반응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였음

10. 5시 30분경 병실로 옮겨 옴. 다소 상태가 호전됨

11. 7시경 병실로 아기를 데리고 옴. 아내는 말도 하고 했으나 여전히 누워있는 거 밖에는 하지 못함

이상 간략히 과정을 기록해 봤다. 첫째 아들은 유도분만으로 자연분만을 했는데 12시간 동안 진통했다. 분만 후에는 다소 힘들어하긴 했으나 금방 회복하여 3일째에는 퇴원을 했는데 제왕절개를 하니 회복 속도가 아주 많이 더뎠다. 수술 자국이 아무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산모가 거동하기도 많이 힘들어 했다. 수술이라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지금은 출산 한 지 3일째인데 처음에 비해서는 많이 나은 상황이다. 아기를 데리고 와서 모유도 먹이고 있다. 출산 당일 나의 정신적 고통과 아내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대부분의 산모와 남편분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힘들게 낳은 아기인 만큼 이쁘긴 참 이쁘다. 신기하게도 첫째 아들의 어릴 때 모습과 너무 닮기도 했다. 이 아이 역시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기 인생을 즐기면서 자랄 수 있게끔 최대한 도와줄 생각이다.^.^



큰아들(왼쪽)과 작은 아들(오른쪽)



눈을 뜬 이쁜 둘째^^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2010.9.19(일) 하동 송림공원 나들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송림공원 바로 옆이라 우리 가족은 자주 이 곳에 나들이를 간다. 매번 보는 경관이라 특별한 건 없지만 아들을 데리고 산책하기에 이 만한 곳도 없다. 일요일을 맞아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는 와이프와 아들과 함께 오전에 김밥과 과일을 싸들고 나들이를 갔다.



아들 놀게 해주려고 글러브와 공도 가지고 갔는데 손이 너무 작아 글러브를 제대로 끼지 못했다.



동생이 태어날 걸 알고 그러는지 요즘 부쩍 엄마에게 떼를 많이 쓴다.



송림공원 안쪽에 최근 놀이터가 새로 생겼다. 야호를 외치면서 미끄럼틀 탄다.



아들은 젓가락을 너무 잘 사용한다. 놀이터에서 놀 때도 젓가락을 사용...



신나게 퐁퐁도 타고...



윗몸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간만에 가족사진도 찍어보려고 삼각대도 들고 갔으나...

아들의 놀잇감으로 전락...ㅋㅋ

언제나처럼 나의 사진은 없고... 7할의 아들과 3할의 와이프만 있을 뿐...

그래도 좋다. ㅋ

2009년 1월 18일 일요일

아이 잠 재우기

08년 5월 26일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들이 태어났다. 물론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아이를 언제 가지면 좋을지 고민하고 앞으로 어떻게 키울지 결심을 하고 낳은 아이지만 막상 눈앞에서 너무나 작고 힘없고 연약한 아이를 보자 우리 부부는 뭔가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초기에는 아무 것도 몰라서 (미리 육아 서적도 몇 권씩 미리 읽고 공부도 했지만) 헤맬 때가 많았다. 잠자기, 젖 먹기, 놀기, 대소변 보기, 씻기 등등..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제법 능숙하게 처리하기는 하지만 가끔 힘들 때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나름대로 아이를 키우면서 얻게 된 노하우(?)들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아기 재우기>

보통 부모들이 가장 쉽게 사용하는 방법은 젖 먹이기이다. 집사람이 모유를 먹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젖을 먹으면서 재우기 시도를 자주했다. 젖을 먹으면서 아기가 잠을 자면 엄마, 아빠 모두 편하다. 그러나 단점은 우리 경험상 아이가 밤에 자주 깬다는 것이다. 깬 후 울면서 다시 엄마 젖을 찾게 된다. 2~3시간 간격으로 깨면 매번 젖을 물리고 그러다 보면 아이는 갈 수록 살이 무럭무럭 쪄서 복스러운 모습이 된다.^^ 그래도 아이가 많이 흥분을 했거나 피곤한 상태에서는 어떤 방법 보다도 효과가 큰 방법이며 어떤 경우에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로 시도한 방법은 "베이비 위스퍼"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스스로 자게 하는 방법이다. 아이를 강보 같은 천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감싼 후 안았다 눕혔다 반복하거나 조용히 아이를 눕히고 발밑에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가만히 있는다. 이 때 아이와 눈을 마주치거나 말을 걸어서는 안된다. 이 방법이 우리가 주로 사용했던 방법인데 아이가 흥분한 상태에서는 엄청난 수고가 필요한 작업이다. 1시간 가량 시도를 한 후 겨우 잠드는 경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5분 이내에 잠이 들기도 한데 일단 잠이 들면 젖 먹여서 재우기 보다는 더 오래 자고 깨는 경우도 줄어 든다. 아기를 키우시는 분은 꼭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 (집사람이 여러번 읽었다. 나는 부분부분만..ㅡㅡ;)

세 번째로 시도한 방법은 역시 전통적으로 우리 나라 어머니들이 애용했던 업어 재우기였다. 이 방법을 한동안 주로 사용했는데 아이가 감기에 걸려서 너무 힘들어 하는 바람에 마음 약한 우리 부부가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었다. 감기에 걸리다 보니 코가 막혀서 아이가 젖을 잘 못 빨게 되어 업어서 재우기를 시도했는데 역시 효과는 만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1~20분이면 잠이 든다. 주의할 점은 아이를 업은 상태에서 다시 바닥에 눕히는 도중에 잠이 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도의 내리기 기술이 필요한데 중간에 아이가 보챌 경우 재빠르게 다시 업어 주면 다시 잠이 든다. 그렇지 못해서 아이가 깨면 다시 20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반복적인 수고가 필요하다.

보통의 우리 어머니들에게 여쭤 보면 십중팔구는 업어서 아이를 재웠다고 한다. 아마 내 생각으로는 그 당시에는 육아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여 언제 아이를 재워야 하는지 어떻게 재워야 하는지 잘 몰라서 아이가 많이 힘든 상태까지 방치를 했고 그런 상태에서 아이를 재우려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업어서 재웠을 것 같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아이를 업은 채로 잠을 자기 했다고 하니 어머니들의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네 번째로 시도한 방법은 노리개 젖꼭지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아이가 잠이 온다는 신호를 보내면 노리개 젖꼭지를 물게 하고 옆에 가만히 있거나 양팔을 지그시 잡아 주어 아이가 편안히 잠이 들게 한다. '노리개 젖꼭지를 사용하면 이빨이 이상해 진다거나 나중에 떼기가 힘들다' 등의 속설이 있지만 인터넷이나 책을 참고한 결과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정보가 많기에 잠 잘 초기에만 잠시 사용하고 잠이 들고 나면 노리개 젖꼭지를 뺀다. 주의할 점은 팔을 고정시키지 않을 경우 스스로 노리개 젖꼭지를 손으로 빼서 가지고 놀면서 잠을 자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너무 피곤할 경우에는 노리개 젖꼭지를 문 채로 온 방을 뒹굴뒹굴 거리기도 하는데 가만히 내버려 두면 혼자 지쳐 자는 경우도 있다.

이 밖에 안아서 재우기, 혼자 놀다 지쳐 잘 때까지 불끄고 기다리기 등의 방법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이가 쉽게 잠을 잘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자기 전에 너무 흥분하게 하거나 너무 피곤하게 해서는 안되며 적당히 잠이 올 수 있는 시점을 빨리 파악하여 재우기를 시도해야 한다. 재우는 중간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미련없이 다시 데리고 놀다가 재울 수 있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여러 방법들 중 현재 우리는 몇 가지 방법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노리개 젖꼭지, 안았다 눕혔다 반복하기, 젖먹여 재우기가 그것이다. 주로 노리개 젖꼭지를 사용하는데 상황에 따라 다른 방법도 사용한다. 지금은 낮잠을 3번 정도 자고 밤잠은 8시~9시 정도에 자서 아침 7시 정도 되면 기상한다. 아주 어릴 때는 3시간 정도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젖 먹여 재우기 방법 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할 것이다.

두서없이 여러 방법들을 기록해 보았다. 첫 번째로 재우기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재우기가 제일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들아 잠 좀 자자~~

2008년 12월 14일 일요일

아들 약 먹이기

 이제 만6개월 하고도 20일 정도 지난 아들이 요즘 감기에 걸려 힘들어 하고 있다. 코도 막히고 가끔 기침도 나온다. 특별히 열은 없는데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오니 젖 먹을 때도 여간 힘들어 하는게 아니다. 밤에 잠도 설치고 콧물이 나올 때마다 손수건으로 닦아 주거나 코 흡입기로 코를 뽑아 주는데 어찌나 소리를 지르는지...

 근처의 소아과에 가서 약을 지어 와서 먹이고 있는데 첫 날은 아무 소리없이 이유식 먹듯이 잘 받아 먹었던 녀석이 이틀째부터는 완전히 뻗대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약이 쓰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약병만 보여도 뻗대고 울면서 버둥거렸다. 그래서 집사람과 같이 머리를 굴려서 사과나 귤을 빨고 있을 때 슬쩍 약 밀어 넣기를 시도했는데 한 두번은 통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잘 속지 않았다.

 아~~이렇게 약 먹이는게 힘들줄이야.ㅠㅠ

 결국 아래집에 우리 아들보다 2달 빠른 아기를 키우고 있는 집에서 약 먹이는 스푼(작은 모종삽처럼 생긴...)을 하나 빌려왔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낸 방법이 아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급히 맥북을 TV에 연결하여 유튜브로 뽀로로 동영상을 하나 켰다. 그러면서 약 스푼으로 뽀로로에 빠져 있을 때 슬쩍 약을 투입했다.

 결과는 대성공! 약간 뻗대기는 했으나 이전처럼 심하게 울고 보채지는 않았다. 이 방법도 아마 임시 방편으로 그칠지도 모르겠다. 에휴 앞으로 애기 약 먹이는 일이 또 하나의 짐으로 다가온다. OTL

2008년 11월 23일 일요일

쾌활하게 웃는 아들의 웃음을 보며

요즘 아들이 옹알옹알 말소리도 제법 내고 물건을 손으로 똑바로 잡는 등 부쩍 자란 느낌입니다. 특이한 소리를 내면 깔깔깔깔 너무나 즐겁게 웃네요. 그런데 신기한 것이 몇 번 그 소리에 반응하여 웃다가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하면 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점점 기억력이 생긴다는 증거이겠죠? 얼마 전에 제가 안고 있으면서 입으로 "뿌뿌뿌뿌~" 소리를 냈는데 그 소리에 너무나 쾌활하고 즐겁게 웃는 아들의 모습을 담아 봤습니다.^^

2008년 9월 23일 화요일

아빠 웃음 소리에 따라 웃는 아들의 모습

저희 아들은 이제 태어난 지 120일이 갓 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달라지는 모습에 너무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아쉽기도 합니다.

처음 태어나서는 쪼글쪼글한 얼굴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몇 일이 지나고 눈도 크게 뜨고 울음 소리도 커지고 엄마 젖도 힘차게 빨더군요.

3달 정도 지나니깐 목도 제법 가누고 제법 가끔씩 소리도 지르고 했습니다.

그리고 100일이 지나자 혼자서 뒤집기를 했고 9월 21일에는 아빠와 놀다가 아빠 웃음 소리에 따라서 자기도 웃는 기특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기념으로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봤습니다.^^

2008년 8월 28일 목요일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심순덕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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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이 시가 생각이 나서 옮겨 봅니다. 여기 저기서 검색을 해보니 엄연히 지은이가 있는데 작자 미상이라 적어 놓은 곳도 있고, '어머니는'을 '엄마는'으로 바꿔놓은 곳, '알았습니다.'를 '알았다'로 바꿔놓은 곳 등 다양한 모습이었습니다.

 올 3월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시를 읽어 보니 그 의미가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 제 나이가 아직 20대 후반이지만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부모님께서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커왔기 때문에 시 구절 하나하나가 제 가슴에 와서 꽂힙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밥은 대충 챙겨 드시고, 손발이 다 닳아서 손톱을 깎을 수 없을 정도까지 부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직 50세 밖에 안되셨는데 말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철이 든 뒤에는 매번 어머니께 이제 살만한데 왜 그렇게 모질게 일하느냐고, 이제 좀 편히 쉬면서 즐기면서 사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예전에 못살고 고생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항상 미래를 대비해야 된다면서 일을 하곤 하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도 그랬고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일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갑자기 병세가 심해지시고는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고생의 결과가 이렇게 나쁘게 될까봐 항상 저는 안절부절 못했는데, 기어이 이런 결과가 나오니 어머니가 미우면서도 너무나 후회가 되고 가슴이 아픕니다.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존재가 저희 집에서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가족 4명이서 꽤 화목하게 지냈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떠나심으로 인해서 아버지, 동생, 그리고 저는 아직도 너무나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은 하지만 그 충격이 너무나 큽니다. 살아갈 목표를 상실한 느낌입니다. 물론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 생각하면서 이겨내려 하지만 쉬운게 아닙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더 자주 전화하고, 더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좋은 옷도 사드리고, 좋은 곳에 여행도 보내 드리고 했어야 하는데...

2008년 7월 7일 월요일

총각에서 아빠로…

지난 5월 26일 저녁 아들 준민이가 세상의 빛을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집사람이 산부인과에서 퇴원을 하고 비가 너무 많이 내린 관계로 집에서 하루 밤을 자고 다음날 집사람과 아기는 처가집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 저희는 주말 부부였죠. 평일에는 총각으로 주말에는 아기 아빠로^^

 처음에는 오래간만의 총각 생활에 자유를 느낄 수 있어 그런대로 지낼만 했지만, 시간이 갈 수록 폐인스런 모습이 늘어가더군요.
가끔가다가 생각나면 하는 설거지와 청소. 한참 쌓여야 돌리는 세탁기. 음식물 쓰레기 통에는 곰팡이와 악취가 번져가고. 아무 곳이나 널려져 있는 옷가지들...

 그런데 어제 일요일 드디어 집사람과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5주만이죠. 아기로 인해 늘어난 짐 때문에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까지 짐 나른다고 고생은 했지만 역시 아내가 있으니깐 뭐가 확 달라지더군요. 바로 청소와 정리를 시작한 아내는 말끔히 집안을 정리했습니다. 더불어 집안의 적막을 해소하는 아기 울음소리까지. 이제 좀 살만한 집이 되었습니다.
 이제 회식자리에서 늦게까지 술은 마시지 못하겠지만, 주말에 낚시도 마음껏 가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아내와 아들만 보고 있으면 즐겁습니다.(아들이 계속 보챌 때는 정말 진땀...ㅡㅡ;;) 저는 총각보단 아빠가 좋습니다. ㅎㅎ

2008년 6월 1일 일요일

아빠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저도 아빠가 되었습니다.

2008년 5월 26일 거제의 한 산부인과에서 건강한 사내아이가 3.52kg으로 엄마 뱃속에서 나왔습니다.

전날 저녁 8시에 유도분만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뒤 거의 하루만에 아이가 나왔습니다.

초산이라 힘들거라 예상은 했지만 집사람이 허리를 심하게 틀어서 무통주사를 2번이나 맞았음에도 진통이 심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자연분만을 마쳤고 산모와 아기 모두 그럭저럭 건강했습니다.

분만실에 들어가서 집사람 뱃속에서 아기가 머리부터 빠져 나오고, 탯줄을 가위로 자르고,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들어본 아빠들만이 그 기쁨과 얼떨떨함 부담감을 알 듯 싶습니다.

처음 바로 씻지도 않은 상태의 아기는 너무나 작고 연약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루 지나고 씻은 후 쌔근쌔근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지금은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이뻐지네요.

물론 기르면서의 고통도 서서히 느끼고 있습니다. ㅡㅡ;;

이제 정말 아빠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제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니도 니 자식을 낳아서 길러봐라. 얼마나 이쁜지 알거다."

^^; 그런데 할아버지(제 아버지)께서 첫 손자를 보시고 더 기뻐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기는 대부분 눈을 감고 있는데 가끔 젖을 먹고 나서 이렇게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습니다.ㅎㅎ

2008년 5월 23일 금요일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

2008년 5월 24일이 저희 아기의 탄생예정일입니다. 첫 아기라 보통 출산이 좀 늦어진다고는 하는데 내심 일찍 나오기를 바랐지만 아직은 무소식이네요.

처 음 산부인과에 갔을 때 초음파 사진상의 점으로 보이던 아기가 어느덧 아주 조그만 사람의 형태로 바뀌고 나중에는 화면 한가득 얼굴로 가득찰 정도로 커졌습니다. 8개월쯤 되니 아기 얼굴 똥실똥실해져서 완벽한 아기의 모습이 나오더군요. 정말 생명의 신비를 절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막달이 되니 집사람이 진통도 조금씩 느끼고, 아기의 태동도 조금 덜해지는군요. 집사람이 진통을 느낄 수록 아기를 볼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가 엄청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어깨의 짐도 느는군요. 과연 이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자기 자식을 맞이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 엄마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가 건강하고 무사히 밖으로 나와서 아름다운 세상을 맞이하길 기도합니다. 아 너무 떨리고 긴장됩니다.^.^

2008년 1월 17일 목요일

집사람 없이 3주 버티기…

2008년도 어느덧 보름이 넘게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올해는 급하게 집 근처에서 새해 일출도 보러 가고 최근 몇 년처럼 무의미하게 새해를 맞이 하지는 않았습니다. 첫 해를 바라보며 5월에 태어나게 될 아이에 대해 건강하게 엄마 뱃속에서 자라달라는 소망, 양가 부모님들 건강하게 지내시라는 소망 등 주로 한 해 우리 가족이 평안했으면 하는 기원들을 마음 속으로 꼭 바랐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보고 듣고 하면서 느끼는 것이 가족의 평안인 것 같습니다. 돈도 명예도 물론 있으면 좋지만요....

그렇게 시작한 새해. 몇 일 있지 않아서 집사람이 마음수련 연수를 떠났습니다. 대전에 마음수련원 본원이 있는데 그곳으로 마음수련을 하러 간 것이죠. 3주 일정으로 떠났습니다. 저번 여름에 연수를 다녀와서 깨달은 바가 많았던지 제법 수련하는 것을 좋아하더군요.

저번 여름에는 집사람 없이 2주일을 보냈는데 완전 폐인 생활을 했죠. 2주일 정도 그렇게 보내니깐
"아 이거 진짜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하는 마음이 절로 나더라구요. 집안은 엉망이고 설거지는 몇 일을 쌓아두고, 옷도 잘 안갈아 입고, 밤에 매일 혼자 술마시고 그랬습니다.

그 래서 이번에는 그렇게 안해야지 하면서 나름대로 빨래도 설거지도 청소도 제때 제때 했습니다. 밥도 잘 챙겨 먹고 그랬죠. 중간에 장모님 생신도 있어서 혼자 처가집 가서 챙겨 드리고 오기도 했죠. 밖에 나가서 식사를 했는데 돈도 제법 나갔고 선물 비용으로도 제법 나갔지만 부모님께 쓰는 돈은 그렇게 아깝지 않더군요.

이제 2주 정도 되었는데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냥 계속 혼자서 살았으면 아예 또 적응이 되었겠지만 같이 살다가 혼자 살려니깐 심적으로 좀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이렇게 또 한달 두달 혼자 살다 보면 예전 결혼 전처럼 그런 생활에 익숙해 지겠지만 말이죠. 근 1년을 같이 살면서 미우나 고우나 마누라는 옆에 있어야 된다는 걸 요즘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평소에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마음도 들면서도 3주나 혼자 가버리는 매정한 마음씨에 미운 마음이 슬쩍 들기도 합니다. 정작 3주 동안 제 자신이 "마음수련"하는 기분이군요.^^;

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아내의 임신과 “나 00 먹고 싶어.”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이제 한 13주 정도 되었습니다. 2월달에 결혼 후 약 6개월만에 아기를 갖게 된 것이죠. 결혼 후 한동안은 참 많이 싸웠죠. 설거지, 빨래, 청소, 식사 준비를 누가 하니부터 시작해서 집에 있을 때 시간보내는 방법, 취침 시각 등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많았습니다. 결국 반반씩 나눠하는 걸로 합의하고 이것저것 의견 조율과 시간의 흐름 속에 차차 안정기에 접어 들었죠.

그런데 아내가 임신을 하고 나서는 당연히 집안에서의 제 몫이 커졌습니다. 물론 커져도 전혀 불만스러운 감정이 생기지 않더군요. 꼭 뱃속의 아기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함께 살면서 안하던 빨래, 청소, 설거지도 해보니 별 거 아니라는 생각도 컸죠.

암튼 예전에 TV 연속극 속에서만 보아 왔던 "여보 나 00 먹고 싶어"를 한 번씩 두 번씩 실제로 겪게 되는군요. 오늘 밤은 무척이나 추웠습니다. 추위 속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좀 쉬고 있는 찰라, 아내의 부름이 들려 왔습니다.
"여보, 나 만두 먹고 싶어. 00사거리 근처에 있는 만두집 알지? 거기 만두가 맛있다던데. 같이 사러 갈까?"
하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이 추운 날 어찌 아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뱃속에 귀여운 아기까지 있는데 말입니다. 내가 가서 사온다고 말하고는 겨울 잠바를 꺼내 입고 바로 달려 갔습니다. 만두집으로~~~
가서 만두를 사서 다시 집으로 뛰어 왔습니다. 맛있게 먹는 아내 모습을 보니 하나도 힘들고 추운 줄 몰랐습니다. 그저 흐뭇하고 기쁘더군요.

이런 게 남편의 기쁨이고, 아기 가진 아내에 대한 배려구나 싶었습니다. 점점 어른이 되어 가는 자신을 느낍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