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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1일 월요일

“최고의 수업”을 읽고

나는 도서관 신간 코너의 책 훑어보기를 좋아한다. 새로 나온 책이라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요즘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마냥 깨끗하게 인쇄되어 나와 있는 책들을 슬쩍 훑어보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보다가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빌려서 읽고 반납하는 길에 다시 빌리고를 반복한다. 이런 행동들이 반복되다 보니 책을 제법 읽기는 읽는데 그렇게 집중해서 잘 읽지는 못하고 정말 지루해서 할 일이 없으면 읽곤 한다.

최근에 읽은 "최고의 수업"이라는 책.

우선 내가 하는 일과도 연관되어 관심이 갔다. 그러나 나는 수업이라는 것에 대한 세부적인 기술에 관한 책은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 있어도 결국 그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큰 그림을 놓치게 되고 또 하나의 틀이 되는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이 책의 앞부분을 읽어 본 결과 그런 종류의 책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오히려 철학적인 측면에 신경을 많이 쓴 책이었다. 그래서 읽어 보고 느낀 점을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은 '홍익인간'이다. 그렇다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이롭게 한다는 건 결국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이 바로 서야 할 것이다. 이는 교육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진정한 고민을 가르치고 중시하는 곳은 찾기 힘들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의 내면을 알고 내면의 힘, 무한가능성을 키워 무한 창조, 자유, 행복을 누린다.
모든 교과교육의 목표는 결국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1. 공부 잘하면서 행복한 아이
2. 공부 잘하면서 불행한 아이
3. 공부 못하면서 행복한 아이
4. 공부 못하면서 불행한 아이

공부라는 목표도 결국은 행복을 위한 것



따라서 행복한 아이를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행복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면 공부는 따라 오는 것이다. 물론 그 공부라는 것은 학교 시험 성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교육이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내면의 성장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공부에 집착하다 보니 한정된 자리를 놓고 경쟁이 생기고 사교육이 생기는 것이다. 이야기가 사교육 쪽으로 흘러가긴 했지만 이러한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지 않고 어떤 정책을 내놓은들 절대로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은 다음에 더 정리하여 적어야겠다.

이 책은 이 '행복'을 위한 내면성장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중반부 이후에는 저자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서 거기에 맞게 자신이 개발하여 활용하고 있는 학생 교사 수업, 세미나 수업 등에 관해 소개하고 있다.

곁가지로
대상이 무엇이든 거기서 재미를 느끼면 놀이가 되고, 의미를 찾으면 공부가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소통, 놀이, 공연, 제의(제사)
이것만이 옳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옳음이 아니라 편견이 된다.

이러한 수업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획득할 수도 있었다. 또한 저자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참고자료 소개란을 보고 '자료의 출처를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자'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당신은 위의 4가지 부류 중에 어느 부류인가? 당신 자식은 어떤 부류였으면 좋겠는가?

2007년 3월 7일 수요일

일본과 중국의 침해와 우리나라의 역사교육

최근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침해성 주장들을 하고 있다.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종군 위안부를 강제로 시행한 증거가 없으니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고구려가 자기들 변방 역사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백두산 영유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에서 공통적인 것은 무엇인가? 바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실리를 위해 문화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우국화 경향을 위한 의도적인 시도일 것이다. 이 문제는 역사왜곡 교과서 승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경제부흥을 이룬 일본이 군사부흥에까지 도전하기 위해서 자국 국민들을 각성시키려는 목적하에 이러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편입시키려는 것과 백두산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의 의도는 좀 더 실제적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중국은 여러 민족이 연합되어 이루어진 국가이다. 주로 한(漢)족이 대부분이지만 50여개 소수 민족이 더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 조선족도 그 중 하나인데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이니 조선족도 결국 중국의 민족이라는 것을 주장하여 소수민족의 이탈을 방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백두산 문제는 간도 문제와 연관된다. 조선과 청 사이에 미해결로 남아있다가 일제시대에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간도 지방을 중국쪽에 넘겨주었다. 백두산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이 후 다시 제기될 지도 모르는 간도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도 국가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기 마련이다. 일본도 중국도 그 본성에 충실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힘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경제, 군사, 문화 등 어느 분야에 힘이 있으면 그만큼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이득을 보게 된다.

그렇 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나라 역사 교육도 좀 더 호전적인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으로 평화를 사랑하고 외세의 무수한 침략을 방어했다고 교과서에서는 가르친다. 그러나 외세가 왜 그리도 우리나라를 침략해 왔던가? 우리나라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연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적들이 걸어왔겠는가?

침략을 당했고, 치욕도 당했다. 심지어는 나라를 구한 영웅을 간신배의 모함에 넘어가 옥에 가두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자행했다. 중립외교를 주장하는 왕을 내몰고 사대주의를 굳건히 지키기도 했다. 외세의 침략에 굳건히 맞서고 견딘게 아니지 않은가? 우 리는 이러한 과거의 역사로 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나와 우리와 국가가 힘이 없으면 우리의 권리를 나라를 빼앗기고 이권을 빼앗긴다는 것을.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우리는 힘을 길러나가야 한다. 새로운 정보 시대에 우리는 예전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세계적으로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위치에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일본과 중국의 태도와 정신은 본받고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2007년 3월 4일 일요일

학원교육, 선수학습, 그리고 공교육 붕괴...그 해결 과제는?

최근 경제성장으로 생활이 안정되고, 부모들의 교육열 또한 높다보니 많은 초등학생들이 학교 외에 학원에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에 편승하여 학원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하나 둘씩 학원에 보내다 보니 이제는 자식들을 학원에 보내는 것이 학교에 보내는 것처럼 보편화되어 버렸다. 경제사정이 좋지 못한 가정에서도 자식의 교육만큼은 다른 집에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학교 교육 외에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보충한다면 학생들의 학습 수준도 올라갈 것이고, 맞벌이 부부가 많은 실정에서 학생들도 부모들이 없는 시간에 할 것이 생겨서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학원학습이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 면이 있다.

학습에는 단계별 수준이 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내용을 배우고 이후 점차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학원에서 학생들은 대부분 선수학습을 하게된다. 즉 초중반 내용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이러한 학생들을 위해 조금 더 심화된 내용을 주로 가르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한 반에 30~40명 정도의 학생이 함께 수업이 이루어지는 체제 속에서는 학원에 다니지 않은 학생들도 있고, 다녔더라도 내용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부류의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은 대체로 중간 단계의 대부분의 학생들을 초점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게 된다. (물론 수준별로 다양하게 가르쳐야 겠지만 교사 혼자서 30~40명 학생들을 40분 안에 수준별로 가르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 똑똑한 학생들은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또 가르쳐 주는 학교 선생님들을 지루해하고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심화된 내용을 찾아서 공부하는 학생들보다는 그 시간을 딴 생각에 투자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게 된다. 학습에 대한 흥미와 학교에 대한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다. 공부에 대한 소질과 의지가 뛰어난 학생은 자기 학습을 스스로 잘 이루어 나간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일반 학생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놀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것은 보통학교교육이 오히려 학습에 방해가 되는 것이다.

여 기서 바로 공교육 부실과도 연관이 된다. 여러 사설학원에서 조금 더 수준별 학습을 받은 학생들은 오히려 학원 선생님을 학교 선생님보다 가깝게 여기고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여건상 학원의 교육이 학교보다 세세하게 이루어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모두가 학원을 다니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모두가 학원을 다닐만큼 경제력이 받쳐 주는가? 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이 문제는 실제 교육현장에서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도시로 갈 수록 이러한 현상은 매우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좀 더 원활하고 융통성있고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할 것인가?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댓글이나 트랙백으로 의견제시 부탁드립니다.^^

2007년 2월 22일 목요일

구글(google)을 사용하면서 느낀 점.

인터넷에는 수많은 정보가 펼쳐져 있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정보를 내가 직접 접해야 의미가 있다. 내가 직접 접하지 않은 정보는 나에게 있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즉,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나에게 가치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검색을 통합 접근이다.

초창기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가장 많이 이용했던 검색엔진은 야후,알타비스타,다음,엠파스 정도였다. 그 후에는 지식인이라는 무서운 보조기구를 장착한 네이버를 가장 많이 이용했다. 네이버로 스포츠 뉴스를 검색해서 보는 것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가장 큰 이유일 정도로 네이버 스포츠를 많이 이용했다. 지금은 자주 업데이트되지 않지만 MLB카툰이라는 최훈씨가 만드는 메이저리그 분석(?) 만화에 빠져서 네이버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ㅎㅎ 그러다가 요즘들어(2006년말) 구글이라는 개념에 푹 빠져있다. 물론 예전에도 검색을 위해 여러 검색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구글도 접한 경험이 있었다. 그 당시 기억으로는 구글은 지금과 똑같이 구글이라는 로고밑에 검색칸 한 줄이 전부였다. 그런데 어떤 내용을 검색을 해보면 내가 찾고자 하는 사이트가 맨 앞부분에 눈에 띄게 나타나지가 않았다. 물론 앞부분에 나타나는 내용도 있었지만 다른 검색 내용들과 좀 차별화된 뭔가가 없었다. 예를 들어 사천시청을 검색하면 네이버같은 경우는 사청시청 홈페이지가 따로 추천페이지로 맨 위에 뜨는데 구글은 그런 기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공식홈페이지를 찾는데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고, 검색 결과가 너무 많이 떠서 '아 이걸 어찌 다 보면서 찾어~~'라고 체념하며 창을 끈 경험이 많았다. 구글 검색이 좋다좋다하는 얘기는 들었지만 나는 '별로네'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런 구글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요즘 완전히 180도 바꾸고 있다. 먼저, 구글에는 광고가 없다. 언제나 간단, 단순, 명료하다. 물론 다른 한국의 대형 포털사이트나 야후 같은 사이트도 광고가 별로 없지만 자기 사이트의 기능들이 어지럽게 메뉴화되어 있어 복잡하다. 꼭 필요한 몇 가지 기능을 제외하고는 사실 걸리적 거리기만 하고 필요없는 기능들이다. 구글은 그런 잡 메뉴들을 최대한 숨겨 놓았다. 그래서 사용자가 직접 찾아서 링크를 클릭하지 않는 이상 간단,단순,명료하다. 광고도 없이 구글은 뭘로 먹고 살까하는 의문이 있긴 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너무 편하고 좋았다.

또 한 간단하게 가입만 하면(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전화번호 입력필요없이..ㅡㅡ;) 개인화된 홈 기능을 제공하여 자기가 필요한 기능으로만 채워진 개인 시작페이지를 가질 수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예전에 아바타 꾸미기나 게임 케릭터를 키우는 것처럼 자기만의 시작페이지를 만들어 가는 재미를 느끼게끔 해준다. 지식혁명 시대의 화두는 개인화일 것 같다. 다양성, 창의성이 존중받고 중요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 차별화 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사람에게 좀 더 자신이 존중받고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라는 쾌감과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일 단 두 가지 점에서 크게 구글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두 장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두가지 장점의 공통점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사용자의 편의를 최대한 생각해 준다는 점이다. 구글은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발전해 가는 회사이다라는 느낌이 점점 더 구글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내가 구글 매니아가 되게 만드는 것 같다. 어떤 것에 충성심을 가지고 애착을 가지는 의미로서의 매니아. 이런 매니아를 형성하여 그 매니아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받아서 입소문(하이퍼링크를 통한)을 타고 점점 더 사용자가 확대되는 것. 그렇게 확대된 사용자들은 가족이나 형제처럼 든든한 후원자이지 지지자가 될 것이다. 물론 결국은 소비자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모든 것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제3의 물결이라 할 수 있는 지식사회의 기본적인 틀을 가장 잘 따르고 실행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구글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좀 더 구글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가고 싶다. 그리고 구글을 통해서 배우고 싶다. 그것을 다시 내가 평생 추구하고자 하는 '교육'과 연관시켜보고 싶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경제변화와 그리고 사회변화 속에서 그 변화의 속도가 떨어지는 교육의 변화도 결국은 이러한 경향으로 나아갈 것을 확신한다. 벌써 그 변화를 접목하여 실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좀 더 자료를 모으고 생각을 정리하여 하나의 내용을 만들어 보고 싶다.

2007년 1월 21일 일요일

한국만의 특수성?

주변에서 이런 말들을 많이 듣게 된다.

"한국은 이러니깐 안돼."
"한국이 뭐 어쩔 수 없지."

축구 경기에서 한국이 패배한 후, 사교육 문제, 수능 혼란, 정부와 정치 부패 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문제나 사건이 보도가 되면 흔히 듯고 말하는 말들이다.그러나 과연 꼭 그렇기만 할까? 한국 축구는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업적을 이루기도 했다.

현 지식 기반 사회에서의 교육의 혼란 문제는 꼭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외국도 그러한 과정을 겪었고 겪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독일과 미국에서 학생의 총기 난사로 몇 명씩이나 사망하고 일본은 학생들의 자살로 인해 문제가 많다.

정부 기관이나 정치권의 부패는 물론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그게 꼭 한국이라서 발생한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이 부패지수 42위라는 최근 통계가 있는데,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는 일찍부터 민주주의가 발달한 서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민의식의 성장 정도가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 부분은 국가 발전을 위해 꼭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한국을 비하하는 말을 하는 자신들은 모두 한국인이다. 문제점을 발견하고 개선하려는 태도는 환영받아 마땅하지만, 단순한 자기 비하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다른 국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들을 한국만 그런 것처럼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자신과 주변, 사회까지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교육제도...
대학입시제도와 관련된 혼란, 교원평가제도 도입과 관련된 대립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항들이다.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유권, 영재교육의 활성화, 학부모들의 사교육 열풍에 대한 재고
교원평가 제도 도입의 외국 사례와 한국 교육의 현실, 그리고 교원들의 의식 변화와 노력과 각성의 필요성, 교원평가의 평가 기준에 대한 의견수렴을 통한 단계적 적용

여러 가지 사안들이 많다.

요즘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 조벽 교수의 "나는 대한민국의 교사다" 등 책을 읽으면서 지식 기반 사회에 있어 교육이 과연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많이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 짧은 지식 밖에 없지만, 나의 의견을 하나씩 시간 날 때마다 풀어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