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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29일 금요일

'복지확대와 벼랑 끝 배수진' 어느 것이 근로의욕과 창의성을 높이는가?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다가

국방부 공인 '불온서적' 저자, 한나라당서 강연

이라는 프레시안 기사를 보게 되었다.

지난 2009년 4월 6일 한나라당에서 장하준 교수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가졌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나도 읽어 본 책이다. 아무튼 이 자리에서 한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의 발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김의원은 복지국가론에 대해
"복지확대가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근로의욕을 고취시키며 공격적이고 창의적 기업가를 창출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독특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어느 인간이 (사회가) 뒤를 받쳐주고 있는데 공격적이고 창의적이겠느냐. 필사적이고 벼랑 끝의 배수의 진을 쳤을 때 모험이 나오는 것"

이라고 했다.

김의원의 주장을 간단히 해보면 복지를 확대했을 때보다 필사적이고 벼랑 끝 배수의 진을 쳤을 때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근로의욕과 창의성도 고취된다는 말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어느 정도 일리있는 말이기는 하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배가 부를 때보다 배가 고플 때 더 필사적으로 뭔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일의 결과가 좋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긴 한다.

하지만 근로의욕이나 창의성이라는 것이 과연 필사적이라고 해서 높아질까? 내 판단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일단 창의성에 대해서만 범위를 좁혀 생각해 보자. 창의성이라는 것은 열심히 필사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생기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창의성은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는 융통성, 남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독창성, 모호한 것들을 연결시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교성, 다양한 경험, 여유있는 휴식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생기는 것이다. 단순 노동의 경우에는 기술을 익힌 후 필사적으로 열심히 하면 그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창의성을 요하는 일의 경우에는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 집이 내가 일을 안해도 먹고 살 걱정 없을 정도의 부자라고 하자. 나는 두 가지 길을 갈 수 있다. 일을 안해도 되니 퍼질러 놀 수도 있고, 돈 벌 걱정을 안해도 되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에 즐겁게 매진하면서 예술, 문학, 여행 등에 자신의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살 수도 있다. 고3 학생 둘이 있다. 한 명은 집에 가난하고 한 명은 부자다. 둘 다 공부를 잘했는데 수능 시험을 망쳐서 재수의 갈림길에 섰다. 가난한 집 학생은 재수 비용이 마음에 걸려 자신의 꿈을 접고 가정의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안정적인 길로 들어섰다. 부자 집 학생은 재수 비용 걱정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분야의 대학 과에 가기 위해 다시 재수를 했다. 재수든 삼수든 사수든 하여 원하는 대학의 과에 결국 입학했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물론 선택에 있어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 결코 이 말이 허황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을 때 과연 어느 쪽이 근로의욕이 더 높을까? 근로의욕도 마찬가지이다. 근로의욕과 창의성에 대해서는 산업시대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것이다. 누가 억지로 시키고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근로의욕이 오히려 낮아지는 사람이 많다. 여유롭다고 사람이 놀기만 한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특히 다양한 종류의 교육(학교 교육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의미함)을 많이 받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복지국가에서 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과 국민들의 행복도,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느 정도 생계 걱정을 던 상태에서 극심한 경쟁 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아 즐겁게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창의성도 발휘되고 근로의욕도 높아지고 국가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성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의 예만 보더라도 필사적으로 노력만 한다고 해서 창의성이 나오는 건 아니다. 예전처럼 희생과 절약과 근면만을 추구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다. 즐겁게 합리적이고 영리하게 공부를 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 경쟁을 통해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생각을 바꾸자. 그리고 실천에 옮기자. 나도...

2010년 5월 2일 일요일

아이폰, 아이패드와 연관된 창의성에 대한 고민

오마이뉴스 기사 " 우리는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부제: 아이폰-아이패드 충격과 창의성의 근원)에서 제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이렇게 다시 언급해 봅니다.

기술과 사회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기사에서는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와 같은 사회에서는 아이폰과 같은 기술이 발현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인문학을 경시하고 봉건적 위계 질서가 사회 밑바탕에 깔려 있고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창의성이 발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관점입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 대하여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감이 있지만 현 상황을 요약하여 핵심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문적 지식은 없지만 제가 느끼기에 한국 사회는 인문학을 경시하고 있다기 보다는 인문학을 기술과 적절히 조화시켜 사용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고등학교 때 문과, 이과 계열을 선택했을 때도 제 동기들의 경우 반반 정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오히려 나중에 이과에서 문과로 바꾸는 친구들은 많았지만 문과에서 이과로 바꾸는 친구는 거의 없었지요. 기술의 바탕에는 철학이 있어야 그 생명력이 커지고 오래 가는 것 같은데 그러한 부분이 미흡한 게 아닌가 합니다.

경쟁에 대해서도 창의성을 요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경쟁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극도의 경쟁 상황은 창의성 발휘를 억제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도 언급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에는 '나눔'과 '배려'가 중요한데 경쟁은 이 '나눔'과 '배려'를 극소화 되게 만들지요.

삶에 있어서도 치열한 경쟁보다는 나눔과 배려가 훨씬 더 의미있고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정치쪽으로 확산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치권의 '윗분'들이 진정으로 '이런 거'를 한국이 만들기를 바란다면 CEO가 부하직원에게 말하듯이 툭툭 던지면서 말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즐겁게 만드려고 노력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 주었으면 좋겠네요. 자기가 해결한답시고 어줍짢은 '정책'을 만들려 하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시다가 꼭 필요한 부분에만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극히 일부분의 말을 전부인냥 듣고 무대뽀로 밀어 붙이지 말고 전체의 의견을 잘 조합하여 최선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끔 도와준다면 참 좋겠네요~~그러면 국민들도 알아서 존경과 신뢰를 보내겠지요?

2007년 2월 15일 목요일

나의 인터넷 시작점, google 그리고 한국의 홈페이지들…

내가 인터넷을 사용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다.

중2때인가...그 당시 인기를 누렸던 천리안이라는 PC통신을 통해서 PPP접속을 통하여 인터넷을 처음 접한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인터넷은 당연히 넷스케이프로 해야 되는 줄 알았다. (지금의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듯이...)

그리고 그 당시는 한글사이트가 별로 없었다. 잘 모르는 남의 나라 글로된 홈페이지에 들어 갔다. 주로 PC운영에 필요한 잡다한 유틸리티들을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그 외 어렸을 때 누구나 찾게 되는 사이트도 가고^^;)

그 당시 지금의 네이버같은 포털 사이트로 내가 주로 접속했었던 곳은 야후, 알타비스타 였다.

그 당시는 모뎀으로 접속을 했기 때문에 전화비 문제로 자주 접속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에 인터넷 전용선이 폭발적으로 설비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전용선이 급속히 늘어나게 된 시점에 PC방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스타크래프트의 열기를 등에 업고 리니지같은 국산 온라인 게임 붐이 일어났다.

결국은 온라인게임의 활성화가 전국의 인터넷 열풍을 부추긴 원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인터넷이 전국적으로 보급됨에 맞추어 각종 홈페이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초창기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처음 접해본 이메일이라는 존재였다. 다음의 한메일은 이메일은 모두 한메일이어야 하는 것처럼 누구나가 대부분이 사용했다.

그 당시 홈페이지에는 플래시가 잘 없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대형사이트에서는 플래시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당시는 드물었다.

인터넷 회선 속도의 증가로 인해 홈페이지들이 좀 더 멋지고 세련된 시각 및 음향효과들로 가득채워졌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홍보를 목적으로 한 기업들의 홈페이지에서 극에 달했다. 아니, 기업에 그치지 않고 정부 홈페이지를 비롯한 대부분의 홈페이지에 적용이 되었다.

그리고 각종 은행, 전자정부, 온라인결재를 필요로 하는 사이트, 게임사이트 등 주요 사이트에서는 액티브X를 반드시 사용해야 되는 것처럼 우후죽순처럼 사용했다.

그러나 google을 비롯한 다른 외국의 사이트는 우리나라의 홈페이지처럼 멋지고 화려하고 세련된 효과를 보여주는 곳이 드물다.

어떻게 보면 옛날 한국의 초창기 홈페이지들을 보는 것도 같은데, 또 가만히 보면 그런 느낌은 아니다.

분명 한국 홈페이지들이 훨씬 세련되어 보인다. 외국 홈페이지들은 단순한 텍스트와 몇 장의 사진들, 단순한 프레임 구성, 하이퍼링크를 통한 단순한 연결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성의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허접해 보이기도 한다.

외국의 한 초등학교 사이트를 방문했는데, 여기가 중고등학생이 만들어 놓은 개인 홈페이지인지, 학교에서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디자인이 세련되지 못하고 외관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해서, 내용이 부실한 것은 아니었다.

진정으로 사용자들이 필요해 할만한 내용들, 읽어볼 만한 글들, 볼만한 사진들, 복잡하지 않은 구성요소들의 배합 등등

멋이 아닌 내용에 있어서는 정말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형식적인 격식적인 글과 구성보다는 방문자들에게 직접 대화하듯이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의 기업이나, 학교 등 홈페이지는 어떤가?

정말 화려하다. 홈페이지를 처음 방문하는 순간 와~~멋진데 싶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이후는 어떤가?? 메뉴 구성이 너무 복잡하다. 없어도 될 내용이 너무 많다. 내가 찾는 정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찾으려면 한참을 헤매야 한다.

인터넷이라는 도구와 홈페이지라는 요소는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것은 관계와 정보로 요약해서 말할 수 있다. 유용한 정보가 쌓여 있고, 그것을 공유하면서 관계하면서 사용자들이 서로 알아가고 배워가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라야 인터넷이라는 것이 가치를 창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홈페이지들은 너무 외관에만 신경쓰고, 편리함이나 단순함, 실질적인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좀 부족한 듯 싶다. 컨셉을 잘 못 잡은 것 같다. 물론 외관도 세련되고 내용 구성도 실질적이고 단순하면 금상첨화지만, 좀 더 사용자들을 배려한 듯한 정성이 아쉽다.

인터넷이나 블로그들, 그리고 주식시장 등에서 온통 구글, 구글하는데 지금까지는 솔직히 네이버만 썼지 구글에 대해서는 몰랐다. 알 필요도 없었다. 왜냐?네이버 하나로도 충분했으니깐...

러나 좀 더 구글에 대해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관계의 범위를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 그 첫발로 구글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