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6일 월요일

Youtube에 동영상 올리기가 더 좋아졌네요.

요즘 아들의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하나씩 유튜브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파일을 올릴 때 아무런 메시지가 따로 나오지 않아서 얼마만큼 올라갔는데 어느 정도 남았는지 판단할 수가 없어서 불편했는데 이 점이 개선되었군요. 컴퓨터 내에서 파일 복사할 때처럼 얼마가 올라갔고 몇 % 올라갔는지 수치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제는 동영상을 다른 사이트에 링크시켜 놓으면 바로 파일 자체를 다운 받을 수 있게 되었군요. 원래는 파일을 직접 다운 받을 수 없어서 파이어폭스 플러그인을 이용하거나 주소 중의 몇 글자를 바꿔서 다운 받곤 했는데 많이 좋아졌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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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23일 화요일

아빠 웃음 소리에 따라 웃는 아들의 모습

저희 아들은 이제 태어난 지 120일이 갓 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달라지는 모습에 너무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아쉽기도 합니다.

처음 태어나서는 쪼글쪼글한 얼굴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몇 일이 지나고 눈도 크게 뜨고 울음 소리도 커지고 엄마 젖도 힘차게 빨더군요.

3달 정도 지나니깐 목도 제법 가누고 제법 가끔씩 소리도 지르고 했습니다.

그리고 100일이 지나자 혼자서 뒤집기를 했고 9월 21일에는 아빠와 놀다가 아빠 웃음 소리에 따라서 자기도 웃는 기특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기념으로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봤습니다.^^

2008년 8월 28일 목요일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썩여도 끄떡없는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
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심순덕 -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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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이 시가 생각이 나서 옮겨 봅니다. 여기 저기서 검색을 해보니 엄연히 지은이가 있는데 작자 미상이라 적어 놓은 곳도 있고, '어머니는'을 '엄마는'으로 바꿔놓은 곳, '알았습니다.'를 '알았다'로 바꿔놓은 곳 등 다양한 모습이었습니다.

 올 3월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시를 읽어 보니 그 의미가 정말 가슴에 와닿습니다. 제 나이가 아직 20대 후반이지만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부모님께서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커왔기 때문에 시 구절 하나하나가 제 가슴에 와서 꽂힙니다.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밥은 대충 챙겨 드시고, 손발이 다 닳아서 손톱을 깎을 수 없을 정도까지 부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직 50세 밖에 안되셨는데 말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철이 든 뒤에는 매번 어머니께 이제 살만한데 왜 그렇게 모질게 일하느냐고, 이제 좀 편히 쉬면서 즐기면서 사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예전에 못살고 고생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항상 미래를 대비해야 된다면서 일을 하곤 하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도 그랬고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일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갑자기 병세가 심해지시고는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제 곁을 떠나셨습니다. 고생의 결과가 이렇게 나쁘게 될까봐 항상 저는 안절부절 못했는데, 기어이 이런 결과가 나오니 어머니가 미우면서도 너무나 후회가 되고 가슴이 아픕니다. 6개월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존재가 저희 집에서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가족 4명이서 꽤 화목하게 지냈지요. 하지만 어머니가 떠나심으로 인해서 아버지, 동생, 그리고 저는 아직도 너무나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은 하지만 그 충격이 너무나 큽니다. 살아갈 목표를 상실한 느낌입니다. 물론 더 힘든 상황에 있는 분들 생각하면서 이겨내려 하지만 쉬운게 아닙니다.

 어머니 살아계실 적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 뵙고, 더 자주 전화하고, 더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좋은 옷도 사드리고, 좋은 곳에 여행도 보내 드리고 했어야 하는데...

2008년 8월 23일 토요일

한국 야구 올림픽 우승을 축하합니다.

사실 이렇게 잘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남겼네요. 한국 야구가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리라고 솔직히 예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WBC에서 4강까지 오르긴 했지만 일본 아마추어 팀에게 지기까지 하고 올림픽 예선에서도 일본에게 지는 등 불안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거기다 이번 예선을 치르면서 중국에게 1-0으로 이기고 대만에게는 8-0으로 이기다가 동점을 허용하는 등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감격 또 감격입니다.

 사실 이번 야구 대표팀은 병역혜택이라는 아주 절실하고도 큰 목표가 있었습니다. 외적 보상이 너무나 컸던 것이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노력하게 만드는 내적 보상이 효과적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특성상 외적 보상의 효과도 무시하지 못하는 거겠죠.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에서 병역혜택을 위해 정말 집중하고 노력하고 팀워크로 똘똘 뭉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사실 첫 경기만 해도 다 이겼던 경기를 9회에 역전당하고 또 역전하고, 중국에게 6회까지 0-0으로 가고, 캐나다에 1-0으로 겨우 이기고 대만전, 일본전, 쿠바전 모두 진검 승부였으며 마음 놓고 경기를 본 게 네덜란드 전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최강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노력하고 집중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확실히 긍정적인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평소 야구에 무척 관심이 많아서 메이저리그, 국내 프로리그 소식을 계속 접하면서 한국 야구가 많이 성장했다지만 아직 확실히 일본에게는 뒤지는 것 같고, 쿠바에게도 쉽게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컸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좋은 승부를 펼쳤고 집중력이 강했죠. 이종욱, 이용규, 정근우 등 발빠르고 재치있는 타자들과 이승엽, 김동주, 이대호 등 힘있는 타자, 박진만, 김민재 등 수비가 좋은 선수, 김현수, 이택근, 이진영, 고영민 등 묵묵히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힘을 보탠 선수들, 류현진, 김광현 에이스와 봉중근, 장원삼, 송승준의 선발 트리오, 그리고 자기 역할을 100%이상 해준 윤석민, 불안하긴 했지만 오승환, 한기주 마무리 투수, 그리고 결정적인 역할을 너무나 멋지게 해준 정대현 선수, 좌완 스페셜리스트 권혁, 마지막으로 궂은 일을 도맡아 해준 진갑용, 강민호 선수까지 따지고 보면 모두가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너무나 잘 해준 것 같습니다.

 단체 경기란게 이런 것 같습니다. 아무리 최강 멤버로 나온다고 하더라고 헤이한 정신 자세로 임하다 보면 큰 코 다칠 수가 있습니다. WBC때의 미국이 그랬고 도하 아시안게임 때의 한국 야구 대표팀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최강의 멤버 구성에 끈끈하 팀웍까지 다져지면 무시무시한 결과가 나옵니다.

 사실 오늘 게임을 보면서 9회에 충분히 역전 당할 가능성이 컸습니다. 모두가 왜 투수 교체를 하지 않느냐고 아우성이었죠. 설상가상으로 강민호 포수가 퇴장을 당하고... 하지만 한국이 이기고자 하는 열의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물론 운이 좋았던 부분도 있겠죠. 사실 쿠바에게 져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한 결과를 내긴 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잘 마무리해준 대표팀에게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분간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야구 대표팀 정말 수고했습니다.^^

2008년 8월 22일 금요일

MAC Drag and Drop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2007년 6월부터 맥북으로부터 맥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얼마 전 아이맥 24인치를 구입하여 완전한 맥 유저가 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컴퓨터를 초등학교 시절 처음 접하면서 DOS, Windwos 3.1, Windows 95, Winodws 98, Winodws ME, Windows XP, Windows VISTA까지 모두 사용해 오면서 윈도우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맥을 사용하면서 불편함이 많았던게 사실이다. 지금껏 윈도우에서 키보드를 사용하여 편리하게 복사 붙여 넣기를 했고, 각종 사진과 mp3파일들을 폴더로 구분하여 편리하게 관리해왔다. 맥에서도 키보드로 복사 붙여넣기가 가능하고 폴더를 일일이 만들어서 파일을 관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뭔가 어색하고 조작하기도 불편했다. 컨트롤 +C를 누르는 것보다 맨커맨드+C를 누르는게 이상하게 어색했다. 물론 많이 사용하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아이맥 24인치를 구입한 후 진정한 GUI가 뭔지 깨닫고 있다. 예전 윈도우 95시절에 컴퓨터 잡지를 보면 맥에 관한 이야기가 한 번씩 나왔는데 GUI가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자주 봤던 기억이 난다. '윈도우도 나름대로 좋은 맥은 과연 어떻길래?'라는 호기심이 컸지만 그 이후로 맥을 접하기가 쉬운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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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맥 24인치 구입 후 화면 해상도는 1600*1000으로 쓰고 있다. 24인치는 1920*1200까지 지원하지만 너무 넓어서 오히려 마우스 움직이기도 불편해서 좀 더 크게 볼 수 있는 1600*1000으로 선택했다. 확실히 아이맥 24인치를 사용하다가 20인치 일반 모니터를 보니 15인치 CRT모니터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24인치의 가독성이 훨씬 뛰어났다.

 오늘 오후 비도 오고 아기와 집사람도 잠에 취한 상태에서 휴대폰에 디카로 찍은 사진을 넣고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맥으로 옮길 겸 휴대폰을 USB로 연결하여 복사, 붙여넣기 작업을 하면서 맥의 편리함을 새로이 느끼게 되었다. 또한 iphoto의 편리함도 함께 느끼게 되었다. 사실 iphoto 08에 불만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디카로 찍은 사진을 가져오기하면 자동으로 iphoto에 등록이 되는데 문제는 그 파일들을 파인더에서 찾아가려면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림 폴더의 iphoto library에 사진들이 모여 있긴 있는데 더블 클릭을 하면 iphoto가 켜져서 파일에 접근할 수가 없다. 

 해결책은 바로 파인더 왼쪽 바에 모든 이미지, 모든 동영상, 모든 도큐멘트에 보면 사진과 동영상, 문서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윈도우의 폴더별 직접 관리 방식에 익숙한 나로서는 불편함이 컸다. 이는 itunes, iphoto 등 맥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에서 모두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다. 즉, 파일을 폴더별로 일일이 관리하기 보다는 한꺼번에 모두 묶은 후 날짜, 이름, 크기, 종류 등에 따라서 분류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이 방식은 어찌 보면 유용하지만 어찌 보면 매우 불편하기도 하다. 자기가 일일이 폴더를 잘 분류하고 관리하는 사람은 직접 폴더로 가서 작업하는게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iphoto에서는 그림 파일의 종류와 크기도 조절이 가능하다 바로 보내기 기능이 그것이다. 단축키는 커맨드+쉬프트+E이다. 휴대폰에서 사진을 보려고 하면 사실 해상도가 큰 사진은 필요없다. 640*480만 해도 충분하다. 내 디카인 삼성 블루 NV24HD는 천만화소까지 지원하여 사진 하나의 크기가 2메가가 넘는다. 그런데 640*480으로 줄일 경우 80~90KB정도로 까지 줄어든다. 따라서 iphoto를 이용하여 바탕화면으로 크기를 줄인 사진을 보낸 후 이것을 휴대폰의 외장메모리로 복사하는데 키보드는 전혀 손 댈 것도 없이 마우스 버튼 하나로만으로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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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사진들을 묶기 좋게 배열한 후 드래그 하여 선택하고 이동하고자 하는 곳에 드랍하기만 하면 끝이다. 레오파드에서는 또한 바탕화면에서도 사진 파일들의 미리 보기가 가능하여 아이콘처럼 표시가 되어 쉽게 어떤 사진인지 구분이 가능하다. 이전의 맥북에서는 이러한 작업이 화면 자체가 작다 보니 불편했는데 아이맥 24인치로 바꾼 후에는 이런 작업이 너무 편했다. 그리고 너무 부드러웠다. 아~이게 진짜 드래그 앤 드랍이구나 하는 느낌이 팍팍 왔다. 물론 윈도우에서도 이런 작업이 가능하긴 하지만 맥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탕화면에서 사진 파일들의 미리 보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매우 유용한 기능인 것 같다.

 또하나 커버 플로우 기능의 유용성을 말하고 싶다. 사실 맥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미리보기 기능은 한 폴더 안에 있는 여러 개의 사진을 보고자 할 때 불편하다. 왜냐하면 여러개의 사진 파일들을 드래그로 선택한 후 미리보기를 해야 키보드 방향키로 넘기면서 보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윈도우에서는 그냥 더블클릭으로 미리보기를 해도 방향키로 넘기면 다음 사진을 보는게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에 레오파드에서 추가된 커버 플로우 기능으로 훨씬 더 편리하고 깔끔하고 세련되게 미리보기가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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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알아갈 수록 맥에 빠져 간다.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상 완전한  스위칭은 불가능하겠지만 맥은 그 불리함을 뛰어 넘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2008년 8월 18일 월요일

iMAC 24인치 도착~

드디어 오늘 낮 1시 쯤에 택배로 imac 24인치가 도착했습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기도 하고(g마켓에서 185만원ㅡㅡ;) 과연 실제로 사용해 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기대로 간밤에 잠도 설쳤습니다. 13인치 맥북 모니터로만 맥을 사용해 왔기에 이것저것 작업을 할 때 특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는데 24인치 모니터로 레오파드 화면을 접하니 입이 떡 벌이지네요.

 집에 맥북과 20인치 코어2듀오 E6300 급 데스크탑이 있어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이상하게 아이맥이 너무 갖고 싶어서 거금을 투자하여 구입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즐겨 하다 보니 다른 기계에는 별로 욕심이 안나는데 좋은 컴퓨터를 보면 너무 욕심이 나더군요. 아이맥도 처음에는 20인치를 살까 하다가 차라리 이왕 사는데 좀 더 투자하여 크고 깨끗한 화면에서 나도 컴퓨터를 해보자 하는 마읍에 집사람을 설득하여 일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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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박스가 엄청 무겁더군요. 갈색 박스에서 아이맥이 들어있는 정품 박스를 꺼내는데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일반 PC본체와 모니터 무게를 합쳐 놓은 무게 이상으로 느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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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구성품은 아이맥 본체, 키보드, 마우스, 리모컨, 안내 책자와 레오파드 설치 DVD가 전부입니다. 얼마 전에 애플 키보드를 하나 구입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안사는 건데 말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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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실행시 나오는 인트로 영상도 화면이 크니깐 정말 멋지더군요. 맥북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일단 이것저것 업데이트하고 프로그램 설치를 해봤는데 역시나 큰화면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20인치보다 24인치는 확실히 매력적이더군요. 애플 키보드야 게임하기에는 불편하지만 일반 타자용으로는 아주 흡족할만큼 편안함을 줍니다. 그런데 마우스는 영 별로더군요. 옆쪽에 버튼을 누르면 창을 바로 전환할 수 있어 좋은데 휠 버튼이 너무 작아 조작이 불편합니다. 또한 버튼이 하나이지만 버튼 크기가 일반 마우스 버튼 2개 꼴이어서 누르는데 다소 뻑뻑한 감이 있습니다. 애플 마우스가 별로라는 얘기는 제법 들었지만 실제로 써보니 역시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직 많이 써보지는 않았지만 iphoto로 카메라에서 사진을 가져오는데 훨씬 빠르고 안정적으로 가져오더군요. 맥북에서 사용할 때에는 바람개비도 많이 돌아가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아이맥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CPU 차이인지 그래픽 카드 성능 차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램은 맥북이 2.5이고 아이맥은 2기가여서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애플 제품답게 다소 가격이 비싸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정도 CPU에, 그래픽카드, 램, 하드디스크, 24인치 모니터, 레오파드, ilife 등을 생각하면 24인치 모니터인 일반 PC를 사는 것과 크게 가격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그래도 물론 많이 비싸다는 사실은 변함없지만요...ㅡㅡ) 이왕 구입했으니 열심히 사용하고 앞으로 몇 년 간은 컴퓨터 살 일이 더 이상 없겠네요.^^

2008년 8월 14일 목요일

인터넷 접속 장애와 터치폰으로 안되는 것

어제 오후에 갑자기 인터넷 접속이 되지 않았다. KT 메가패X를 만족하면서 쓰고 있다가 CX 케이블넷에서 디지털 TV 방송과 인터넷을 결합하면 가격도 싸고 고품질 TV 시청도 가능하다길래 바꾼 상태였다. 결과론적으로 VOD 다시보기 기능과 많은 채널을 HD급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인터넷은 속도도 메가패X만큼 나오지 않고 접속 장애도 자주 생겼다. 메가패X는 접속와 속도 면에서 쓰면서 한 번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아무튼 인터넷 접속이 안되어 A/S를 신청하려고 전화를 했다. 집에 전화기가 없는 관계로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ARS 시스템에서 상담원까지 연결하려면 보통 몇 번 번호를 눌러야 한다. 그런데 무척 난감하였다. 경남 지역은 2번을 누르라고 하는데 터치폰에서는 어떻게 눌러야 되지?ㅋㅋ

혹시 번호 송출 기능이 있나 싶어 찾아 봐도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을 해야 되는지? 터치폰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부랴부랴 집사람의 구형 핸드폰(애니콜 예전에 많이 가지고 다니던 일명 문근영 새끼폰)으로 서비스 신청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터넷 접속 문제는 우리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 모두의 문제였다. 지역 네트워크 관리하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을 하면 될 것을 상담원은 담당기사를 보내드릴 텐데 내부 사정으로 2~3일 정도 기다려야 되겠다고 답변을 했다. 그러면 2~3일 인터넷을 못하게 되는 책임은 누가 져야 되냐고 따지니 그 기간만큼 요금을 면제해 준다고 한다.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지... 만약 인터넷으로 중요한 사항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한테 그것이 적절한 보상책인지 묻고 싶다. 좀 더 고객에게 만족을 느낄 수 있게끔 일을 처리하는 자세와 기술력이 필요할 것 같다.